‘여성주의 미술’은 어떻게 올해 가장 핫한 전시 트렌드가 되었나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여성주의 미술’은 어떻게 올해 가장 핫한 전시 트렌드가 되었나 🎨
미술관 가서 전시 보는 게 취미인 뉴니커 있나요? 저도 관심 가는 전시는 빼놓지 않고 보려고 하는 편인데요. 올해 들어 부쩍 눈에 띄는 전시 트렌드가 하나 있어요. 바로 여성 작가의 작품과 삶을 조명하는 전시가 연달아 기획되고 있다는 거예요.
물론 여성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는 예전에도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조금 달라요. 단순히 여성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해석해내고 있기 때문. 이런 흐름에는 다양한 역사적·사회적 변화가 영향을 미쳤고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지금부터 같이 살펴봐요.
훑어보기 👀: 국내 미술관에 불어온 ‘여성주의 미술’이라는 바람
훗날 2024년은 ‘여성’을 키워드로 삼은 전시가 끊이지 않았던 해로 기록될 거예요.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술관들의 전시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는데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주류 미술사에서 배제됐던 자수와 여성 작가들을 재조명한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전시가 5월~8월에 열렸어요 🪡. 호암미술관에서는 동아시아 불교미술 속 여성의 역할을 조명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3~6월)이 열렸고요 🪷.
서울시립미술관은 천경자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와 동시대 여성 작가 22명의 작품·자료를 모은 전시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을 마련했어요 👩🎨. 같은 미술관에서 대표적인 국내 여성주의 미술가 중 한 명인 김인순 작가의 컬렉션, ‘일어서는 삶’ 전시도 진행 중이고요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아시아 11개국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조명한 야심찬 기획전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도 열리고 있어요 🌏.
이런 전시들은 모두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흔히 ‘규방 공예’로 여겨져 폄하됐던 자수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주목했을 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자수 작가들을 발굴해 소개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어요. 전시를 보고 온 사람들이 “자수의 세계가 이렇게 깊은 줄 몰랐다”며 SNS에 후기를 쏟아내기도 했고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도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전시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동아시아 불교미술 속 여성들을 조명한 대규모 기획전은 세계 최초였기 때문. 전시는 ‘여성은 성불을 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불교와 남성 위주인 불교미술 속 여성을 조명했어요. “다시 보기 힘들 전시”라는 호평 속에 9만 명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고.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 전시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졌던 가사·양육 ‘의무’와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시대의 틀을 깨고 앞으로 나아갔던 여성 작가들을 조명했어요 💪. 그밖에도 국내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작가의 개인전, ‘한국 최초 여성 조경가’라는 타이틀로 잘 알려진 정영선 조경가의 개인전 ‘이땅에 숨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도 관객들을 만났어요 🌿.
이처럼 여성을 조명한 전시가 연달아 열리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에요. 이런 전시가 기획되고 관객들에게 선보이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자세히 보기 🔎: 시대가 바뀌었고, 미술이 여성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미술계에서 여성을 조명하는 흐름이 나타난 게 완전히 새로운 일은 아니에요. 현대미술이나 서양미술에서는 일찌감치 여성주의 미술에 주목하는 흐름이 나타났기 때문. 초청 작가의 90%가 여성이었던 2022년 베니스비엔날레는 흑인 여성 예술가 2명에게 각각 최고의 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여하기도 했고요 🏆. 여성미술에 대한 조명이 이뤄진 뒤, 오랫동안 주류에서 배제되어 왔던 또 다른 존재인 흑인 여성 예술가들을 주목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
반면 동양미술이나 전통미술 분야는 얘기가 조금 달라요. 유교 사상과 남성주의적 문화가 공고한 동양미술에서는 여성 작가에 주목하기 어려웠고, 전통미술 분야에서는 여성 작가의 존재 자체가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 그렇다 보니 관련 전시가 기획되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변화의 바람은 학계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했는데요. 비트 팀이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관련 연구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걸 변화의 계기로 꼽아요.
이런 맥락에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의 사전 프로그램으로 열린 학술대회 ‘한국미술과 젠더’는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요. 근대 이전의 동양미술을 젠더적 관점에서 접근한 사례는 많지 않았는데, 논의의 지평을 넓힌 계기였다는 거예요 ✨. 대규모 학술대회를 열 수 있을 만큼 이 분야의 연구 성과가 쌓인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요.
학계뿐 아니라 미술관 전문 인력 중 여성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와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공립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모두 여성이 관장을 맡고 있고, 전시를 기획하는 학예연구실에도 여성이 늘고 있는 것 👩. 여성주의 미술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관련 전시를 기획할 여건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관람객과 사회 분위기가 변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일반적으로 미술 전시 관람객은 남성보다는 여성 비중이 높은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MZ세대 여성 관객들은 관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에요. 전시 ‘인증샷’을 찍어 공유할 뿐 아니라, 감상평을 남기는 데에도 진심이기 때문. 전시의 메시지에 주목하며 공감하기도 하고요.
이승혜 큐레이터는 “전통 불교미술은 현대미술 전시와는 관객층이 달라서 젊은 여성 관객이 많이 오는 전시는 원래 아닌데, 이번에는 달랐다”고 설명해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가 제시한 메시지에 공감한 젊은 여성 관객이 많았다는 것. 여기에는 분명 ‘사회가 변했다’고 볼 만한 지점이 있고요.
‘사회가 변했다’고 말할 때, 그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변한 거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하지만 알고 보면 자기 자리에서 변화를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또 싸워낸 사람들 덕분에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하는 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돼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천천히, 그러나 폭발적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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