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지우기’ 논란과 이유

뉴니커, 학교 역사 시간에 홍범도 장군 공부한 적 있잖아요. ‘봉오동 전투’를 이끈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자 독립운동가인데요. 얼마 전 국방부 청사·육군사관학교에 있는 그의 흉상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얘기로 시끌시끌했고요. 일단 육사에 있는 흉상만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는데요. 끝나지 않은 역사 논쟁의 후폭풍 들여다봤어요.
홍 장군 흉상 왜 옮긴다는 거였지?
정부는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홍 장군의 흉상이 우리나라 육군 장교를 길러내는 육사에 있는 게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에요:
자유시 참변 가담했는데: 1921년 소련군이 당시 소련 땅으로 온 독립군 부대를 살해한 ‘자유시 참변’에 홍 장군이 가담한 의혹을 가장 큰 이유로 들어요. 홍 장군은 일본군을 피해 당시 힘없는 나라들의 독립을 돕던 소련으로 활동 지역을 옮겼고, ‘우리나라를 도와달라’며 공산당인 소련 볼셰비키당에 들어갔어요. 이후 자유시 참변 때도 소련 편에 섰고 재판 위원 등으로 참여했다는 것.
육사에 있는 거 안 어울려: 이에 문재인 정부 때 홍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세워진 게 국군의 정체성을 훼손했다고 보고, 다른 데로 옮길 것을 검토한 거라고.
정부 얘기에 문제는 없어?
홍 장군과 당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사실 검증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아요:
자유시 참변 가담한 적 없어: 많은 역사학자는 홍 장군의 부대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이 없다고 말해요. 참변 당시 홍 장군은 자유시에 없었고, 뒤늦게 이를 알고 통곡했다는 증언이 남아있다고도 해요. 재판 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재판에 넘겨진 독립군 부대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후엔 오히려 참변의 진상을 밝혀달라며 러시아 측에 탄원서를 낸 점도 지적하고요.
이 빨치산이 그 빨치산이냐: 국방부는 홍 장군이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포함해 1919~1922년 빨치산 활동을 한 게 공산주의 이력이라고 주장했는데요. 기자들은 “당시 빨치산은 ‘partisan(비정규군)’을 뜻하는 말로, 그때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은 다 빨치산이고 오늘날 말하는 빨치산과 다르다”라고 지적했어요. 북한군 비정규 부대 ‘빨치산’은 적어도 1945년 해방 이후 활동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은 뭐래?
정치권 😡🤐: 흉상 이전이 확정되자 더불어민주당은 “독립영웅에 대한 모욕”이라며 크게 반발했어요. 국민의힘도 독립영웅에 대한 논란을 키워봐야 좋을 게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고요.
육사 원로들 😮💨: 군은 색깔로 움직이는 이념집단이 아니라고 꼬집어요.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나라·민족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라는 것. 독립운동가를 육사에서 기리는 게 가장 좋은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고요.
역사학계 😡: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비판이 나와요. 정부가 나서서 역사적 인물을 정치적으로 깎아내려선 안 된다는 것. 중국·북한과 멀어지며 역사관마저 이념을 따르고, 지지층을 모으는 수단으로 쓴다는 거예요. 또, 정부 주장대로 ‘홍범도 장군 = 공산주의자’로 결론 내릴 경우 교과서도 뜯어고쳐야 하는 등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