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임신중단처벌법, 폐지되다

기나긴 싸움 끝에, 2021년 1월 1일부로 임신중단 처벌법(=낙태죄)는 폐지됐어요. 순탄하지 않았던 과정을 차근차근 짚어볼게요.

 

임신중단 처벌법, 정확하게 어떤 거더라? 😲

폐지된 ‘낙태죄’는 한 마디로 ‘임신을 임의로 중단하면 죄’라고 정해둔 건데요. 1953년, 임신중단을 한 여성(자기낙태죄)과 이를 도운 의사(동의낙태죄)를 모두 처벌하겠다는 형법이 만들어졌어요. 이후 이 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게 됐는데요. 첫 판결은 2012년에 있었어요. 

  • 2012년 첫 판결은 ‘헌법합치’: 재판관 의견이 4:4(1명 공석)로 비기면서 “임신중단 처벌법,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론이 났었어요. 태아의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임신중단을 처벌하지 않으면 임신중단이 너무 공공연하게 일어나 생명을 경시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게 그 이유였고요.
  • 2019년 두 번째 판결은 ‘헌법불합치’: 7년 후인 2019년 7월엔 이 법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이 나왔어요. 이 재판에서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받은 법은 2개예요.
  1. 임신한 여성이 임신 중절하면 처벌하겠다 (형법 제269조 제1항)
  2. 임신한 여성이 임신 중절하는 걸 도운 사람도 처벌하겠다 (형법 제270조 제1항)

 

헌법불합치? 그래서 바로 없어진 거야?

아니에요. 당장 법을 폐지해야 하는 '위헌’이 아닌, ‘헌법에는 맞지 않지만, 지금 당장 폐지하지는 말자'는 ’헌법불합치’로 결정됐거든요. 대신 관련된 법을 정해진 시간까지 개정해야 하는데요. 임신중단 처벌법의 경우,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을 바꿔야 했어요.

  • 예를 들어: 임신중단을 처벌하는 게 위헌이라고 결정됐다면, 내일 당장 임신중단 시술을 하는 의사선생님은 처벌받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헌법불합치로 결정됐으니, 아직 이 죄가 유효한 상태. 법 개정 전까지 여전히 처벌받을 수 있는 거죠. 임신 몇주까지 임신중단을 허용할지, 임신중단을 하는 ‘사회경제적 이유'를 어떻게 증명할지 정해진 것도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 이어졌어요.

 

정부가 내놓은 안에 사람들이 화가 난 적도 있지?

정부가 1년 6개월 만에 입법예고안*을 내놓았는데, 이걸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어요. 무슨 내용이었냐면:

  • 부분적으로 허용할게: 형법에 있는 임신중단 처벌법을 완전 삭제하는 대신, 임신중단을 부분적으로 허용한다고 했어요. 임신 초기 14주까지는 본인이 원하면 임신중단을 해도 처벌받지 않고요. 15주에서 24주까지는 합당한 사유가 있을 때 ‘조건부’로 임신중단을 할 수 있어요.
  • 경제적, 사회적 상황도 고려할게: 원래는 임신부나 배우자가 유전병, 전염병을 앓고 있을 때,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을 때, 혈족이나 인척 사이에 임신을 했을 때, 임부의 건강이 위독할 때 등 5가지 경우에 한해 임신중단을 허용했는데요. 이제는 경제적, 사회적 상황 때문에 아이를 낳거나 기르기 힘든 형편인 여성도 임신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해요. 단, 전문가와 상담을 하고 24시간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꼭 거쳐야 해요.

하지만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컸는데요. 1) 임신중단 허용의 기준이 되는 날인 ‘마지막 정혈(월경) 시작일’이 모호하다는 점, 2) 남성은 빼놓고 여성만 처벌한다는 점, 3) 원래 인정하지 않는 의사의 진료거부권을 임신중단 시술의 경우에만 인정하는 점 등이 문제로 꼽혔어요. 그 외에도  한 국회의원이 입법예고안에서 임신중단을 허용할 때 고려하는 ‘사회, 경제적 사유’의 범위가 너무 넓다며, “낙태(임신중단)가 남용될 수 있다”는 말을 해서 크게 비판받기도 했어요.

* 입법예고안: 국민의 일상생활이나 권리와 직결되는 법령을 만들거나 수정할 때, 그 내용을 미리 알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0일간 공지해요.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난 거야?

입법예고안은 흐지부지됐고, 어떤 법도 만들어지지 않은 채로 시간이 지났어요. 결국 2021년 1월 1일부로 임신중단 처벌법은 자동 폐지됐고요. 따라서 임신중단을 해도 처벌받지 않게 됐고, 병원에서 중단 시술을 받을수도 있게 된 것. 미프진과 같은 약물에 의한 임신중단도 합법이에요. 원래 공식적으로 국내 유통이 되지 않는 상태였는데, 제약사 현대약품이 들여오겠다고 2021년 3월 2일 발표했어요.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애매해요. 불법은 아니지만 아직 합법적인 임신중단의 범위가 딱 나오지 않았거든요. 임신중단 처벌법이 폐지되며 마련됐어야 할 임신중단 지원책도 없고, 건강보험 지원도 안 되는 상황. 사라진 처벌법을 대체할 법안을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냐면:

  • 여성계: 인공임신중단 약물이 정식으로 유통되도록 하고, 임신중단할 때 건강보험이 적용되도록 하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해!
  • 인권위: 앞으로 개정될 법안을 심의할 때, 여성을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는 방향이면 좋겠어. 
  • 산부인과학회: 22주 이후엔 태아가 엄마 몸 밖에서도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임신중단을 허용해선 안 돼. 임신 10주 미만일 경우에만 임신중단시술을 시행할 거야.
  • 종교계: 임신중단을 처벌하는 형법을 없애면 안 돼.

 

이 외에도 임신중단과 관련 있는 다른 법률도 개정을 논의해야 해요. 근로기준법을 예로 들면, 임신을 임의로 중단했을 경우 유산했을 때와 비슷하게 휴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넣을 수 있어요. 약사법, 의료기기법, 의료법 등도 매만져야 하고요. 2021년 3월에 열린 임시국회에서, 임신중단 관련 사안들이 어떻게 처리될지 좀 더 지켜봐야 해요.

 

+ 왜 임신중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나요?

뉴닉은 태아에 초점을 두고 있는 단어 ‘낙태’ 대신, 임신의 주체인 여성의 입장에서 말하는 단어 ‘임신 중단’을 사용합니다. (🦔고슴이: 고슴이 몸은 고슴이 꺼!) 👉 뉴닉의 여성용어 가이드 보러 가기

 

+ 또 하나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 법

모자보건법. 모자보건법은 현재 임신중단 처벌법의 예외 사항을 규정하던 법인데요. 유전적 장애, 강간, 근친상간 등의 이유에 한하여 임신 6개월(24주)까지 임신중단을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거든요. 모자보건법이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어왔고요. 

 

+ 요즘 전세계에서 임신중단은

세계 196국 중 우리나라를 포함한 134개국이 부분적으로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어요.

어떤 경우에도 절대 임신중단은 안 된다고 말하는 나라는 6개. 반대로 아무 제한 없이 임신중단할 수 있는 나라는 4개국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임신중단에 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나라도, 다시 보수적인 태도로 회귀하는 나라도 생겨나는 중.

  • 2018년 5월 아일랜드: 가톨릭 국가였지만, 국민투표로 임신중단을 합법화했어요.
  • 2018년 8월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상원에서 임신 초기에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를 못 했어요.
  • 2019년 3월 미국(조지아주): 태아 심장 박동이 들리면(약 6주) 임신중단을 금지해야 한다는 법(심장박동법, 4월 1일. #1 기사 참고)이 하원에서 통과됐죠.
  • 2019년 4월 몰타: 임신중단 전면 금지국 중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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