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 72주기


국방부가 72년 만에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대요.


제주 4·3 사건, 많이 들어봤는데?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약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에서 벌어진 일. 무력 충돌이 있었고, 이를 진압하면서 제주도민의 10%인 약 3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도민의 10%나? 더 자세히 알려줘.
해방 이후 1945년부터 남한 정부가 생긴 1948년까지 미군이 한국을 통치했었는데요. 당시 제주도에서는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정당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계속 부딪히던 미군정과 남로당은 5·10 총선거를 기점으로 대규모 무력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 미국: 북한은 놔두고, 남한 사람들끼리라도 선거해서 정부를 세우자.
  • 남로당: 그렇게 하면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완전히 분단되고 말 거야! 

총선거에 반대한 남로당은 1948년 4월 3일, 총과 칼을 들고 경찰서와 우익단체, 선거관리사무소를 습격했어요. 그 결과 제주도에서만 투표율 미달로 선거가 무산된 곳이 나왔고요. 이승만과 미군정은 이를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제주도 초토화 작전을 벌여 무분별한 탄압을 시작했던 것.

  • 제주에 내려진 포고문: ‘해안선에서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역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한다.’

제주 4·3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많은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과도한 진압작전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임을 당했고, 그중 30%는 어린이와 노인, 여성이었다고.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라, 간단하게 줄이기에 복잡한 부분이 많아요. 더 궁금하시다면 여기(영상), 혹은 여기(행안부 국가기록원)를 참고해주세요.)


지금은 어떤 상황이야?

50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었는데요. 2000년에야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시작되었어요. 작년, 문재인 대통령이 희생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조치와 더불어 국회와도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고요지금까지 국방부는 ‘제주 4·3사건은 군경이 투입되어 무장봉기를 진압한 사건'이라는 입장이었는데요. 72년이 지난 오늘, 처음으로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감을 표명’할 예정이라고.

매해 4월 3일 전후에는 정치권에서 특별법 통과를 약속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한 채, 국회에서 1년 넘게 표류 중이라고.

#사회#국가폭력#제주 4·3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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