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피해자 72년 만에 무죄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누명으로 사형당했던 한 철도기관사가 7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어요. 당시 그가 사형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여순사건’이 있어요.

여순사건, 들어는 봤는데 뭐더라?
여순사건(여수·순천 사건)의 시작은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그때 여수에 있던 군인이 받은 명령: “제주도로 가서 반란자들을 토벌하라!(제주 4·3사건*)” 이에 군인 2000여 명은 시민을 죽이라는 명령은 따르지 않겠다며 봉기를 일으켰어요. 운동은 여수에서 순천으로 퍼지며, 6년 6개월간 계속됐고요. 정부는 이를 반란이라고 보고 계엄군을 보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잡아갔습니다.

*제주 4·3사건: 1947년 제주도에는 5·10 총선거를 앞두고 큰 대치 상황이 7년 동안 있었는데요. 이승만 정부는 이를 반란으로 보고 진압 작전을 명령해, 약 3만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겠지?
목숨을 잃은 사람은 자그마치 1만 1031명(정부 공식 발표 기준). 일부 전문가는 최소 2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보고 있어요. 민간인 3700여 명이 재판으로 끌려갔는데,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거나 기록(판결문)도 없이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고.


억울한 사람이 많겠네...
사형 집행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46명.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은 고 장환봉 씨도 그중 한 명이에요. 철도기관사였던 그는 순천역에서 근무하다 군인들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22일 만에 처형됐어요. 당시 3살이었던 그의 딸(현재 75세)은 2011년, 아버지가 적법한 절차 없이 처형당했으니 다시 재판해달라고 법원에 청구했고요. 그리고 이번 1월 20일,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거예요.

  • 대법원 ⚖️: “당시 판결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밝힌다.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고인과 유족에게 깊이 사과드린다.”

목숨을 잃은 사람 외에도, 여순사건 유죄 판결에 따라 피해를 당한 민간인은 3000~5000명으로 추정돼요. 이번 판결로 인해 여순사건에 관련된 다른 민간인 희생자도 억울함을 풀 수 있을지 관심이 쏟아지고 있어요.

+ 이런 경우 보상이 돼?
재판부의 실수로 누명을 쓰거나 형 집행을 받은 사람은 국가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요(형사보상). 여순사건 관련 피해자의 일괄적인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고요.

+ 특별법은 어떻게 되고 있어?
통과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여요. 여순사건 특별법이 처음 발의된 건 2001년(16대 국회)이고, 이후 18, 19대, 20대 국회에도 발의됐으나 법안 심사에만 머무르다 통과되지 못했거든요. 2월 예정된 20대 임시국회를 기다리고 있는데, 통과될지는 불투명한 상황. 피해자들은 이에 대해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사회#인권#법원검찰#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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