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마스크 멍상



내 마음에도 마스크가 필요해요. 이제 바깥을 향해 있던 시선을 내 안으로 가져오세요. 그랬구나. TV 뉴스를 볼 때면, 불안했구나. 집 밖을 나가지 못할 때면, 무력감을 느꼈구나. 혐오감을 느낄 때면, 그런 나 자신을 탓하느라 힘들었구나. 이렇게 내 마음을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도 고통과 나 사이에 숨 쉴 수 있는 틈이 생긴답니다. 코로나19로부터 나를 지키는 멍상을 함께 해요.



왜 마음에도 마스크가 필요해?


코로나19가 일상 깊숙이 들어와 버린 요즘이에요. 안 그래도 재택근무라서 방에만 있었는데, 다니던 요가원도 이번 달은 쉰다네요. 어제는 강아지랑 집에서 뉴스만 봤어요. 확진자들, 의료진들, 온 국민의 혐오를 받는 집단 등등. 바깥의 고통에만 집중하느라 막상 나의 고통에는 귀 기울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고통? 나는 고통스럽지는 않은데!


언제든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죄책감,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느껴지는 무력감, 좁아진 일상의 반경이 가져다주는 단절감과 소외감, 배려 없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올라오는 혐오감, 무분별한 루머에 흔들리는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 이런 마음들은 얼마나 명백한 고통인가요? 내가 나의 마음을 알아봐 주고 고통과 나 사이에 숨 쉴 틈을 만드는, ‘마스크 멍상’을 준비했어요.

근데 갑분 명상? 명상이 뭐길래? (멍상은 또 뭐고..)


멍상은 왈이네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부르는 말이에요. 마음챙김 명상은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거예요. 바깥을 향해 있던 시선을 내 안으로 가져오는 거죠. 생각과 감정을 내 멋대로 바꾸는 연습도, 무작정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연습도 아니에요. 떠오르면 생각이나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을 연습합니다. 그러다 보면 고통에 완전히 압도되거나, 고통으로부터 지레 겁먹고 도망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거든요.

엥? 고통을 다정하게?


고통은 삶에 절대 있으면 안 될, 무조건 사라져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에요. 고통이 없는 삶이 없듯이, 고통은 우리 삶에 ‘이미’ 들어와 있어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고통은 더 거세져요. 하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을 비틀면 숨을 쉴 여유가 생겨요. 고통을 허락하는 건 이런 사태가 또 발생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수용하고,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에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에요.


실질적 고통(불안,공포) x 저항(사라져야 해! 얼른 끝나야 해!) 

= 내가 느끼는 고통의 총량(😣 😖)

그래서 마스크 멍상을 하면 뭐가 달라져?


마스크를 끼고 나면 길거리를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처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지요. 내가 편히 숨 쉴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도 마음을 열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연민이랍니다. 마음의 마스크는 동날 일도 없으니 안심이에요. ☺️

나를 지키는 마스크 멍상

내 마음에도 마스크가 필요해요. 이제 바깥을 향해 있던 시선을 내 안으로 가져오세요. 그랬구나. TV 뉴스를 볼 때면, 불안했구나. 집 밖을 나가지 못할 때면, 무력감을 느꼈구나. 혐오감을 느낄 때면, 그런 나 자신을 탓하느라 힘들었구나. 이렇게 내 마음을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도 고통과 나 사이에 숨 쉴 수 있는 틈이 생긴답니다. 코로나19로부터 나를 지키는 멍상을 함께 해요.



왜 마음에도 마스크가 필요해?


코로나19가 일상 깊숙이 들어와 버린 요즘이에요. 안 그래도 재택근무라서 방에만 있었는데, 다니던 요가원도 이번 달은 쉰다네요. 어제는 강아지랑 집에서 뉴스만 봤어요. 확진자들, 의료진들, 온 국민의 혐오를 받는 집단 등등. 바깥의 고통에만 집중하느라 막상 나의 고통에는 귀 기울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고통? 나는 고통스럽지는 않은데!


언제든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죄책감,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느껴지는 무력감, 좁아진 일상의 반경이 가져다주는 단절감과 소외감, 배려 없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올라오는 혐오감, 무분별한 루머에 흔들리는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 이런 마음들은 얼마나 명백한 고통인가요? 내가 나의 마음을 알아봐 주고 고통과 나 사이에 숨 쉴 틈을 만드는, ‘마스크 멍상’을 준비했어요.

근데 갑분 명상? 명상이 뭐길래? (멍상은 또 뭐고..)


멍상은 왈이네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부르는 말이에요. 마음챙김 명상은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거예요. 바깥을 향해 있던 시선을 내 안으로 가져오는 거죠. 생각과 감정을 내 멋대로 바꾸는 연습도, 무작정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연습도 아니에요. 떠오르면 생각이나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을 연습합니다. 그러다 보면 고통에 완전히 압도되거나, 고통으로부터 지레 겁먹고 도망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거든요.

엥? 고통을 다정하게?


고통은 삶에 절대 있으면 안 될, 무조건 사라져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에요. 고통이 없는 삶이 없듯이, 고통은 우리 삶에 ‘이미’ 들어와 있어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고통은 더 거세져요. 하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을 비틀면 숨을 쉴 여유가 생겨요. 고통을 허락하는 건 이런 사태가 또 발생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수용하고,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에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에요.


실질적 고통(불안,공포) x 저항(사라져야 해! 얼른 끝나야 해!) = 내가 느끼는 고통의 총량(😣 😖)

그래서 마스크 멍상을 하면 뭐가 달라져?


마스크를 끼고 나면 길거리를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처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지요. 내가 편히 숨 쉴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도 마음을 열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연민이랍니다. 마음의 마스크는 동날 일도 없으니 안심이에요. ☺️

자, 그럼 마스크 멍상, 

이제 시작해볼까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힘들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는 그대로 허락해주는 멍상입니다.

고슴이: “마음 마스크, 동나지 않도록 넉넉히 준비했슴?”

왈이: “당연하개. 착- 나부터 쓰고 옆 사람에게 나누어주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정심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변화시킬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하루의 순간을 한껏 살아가고, 순간을 즐기며, 고난은 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 라인홀트 니부어,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정심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변화시킬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하루의 순간을 한껏 살아가고, 순간을 즐기며, 고난은 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 라인홀트 니부어,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