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안중근 VS 메이지 천황을 존경한 안중근 어느것이 진짜일까?

작성자 돌머리작가

독립운동가 안중근 VS 메이지 천황을 존경한 안중근 어느것이 진짜일까?

돌머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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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_qu5xotsb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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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안중근의사는 독립운동가이다.

그래서 안중근은 당연히 일본제국을 싫어했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도널드 킨이 지은 "메이지라는 시대1,2" 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실려있다.

한겨레 기자가 밝히듯이 도널드 킨은 안중근은 반일주의자가 아니었고,

안중근이 가장 존경한 인물은 메이지 천황이었다고 한다. 또한 안중근은 '이토가 의도적으로 천황을 기만했다'고 보았으며 천황이 바라던 것은 한국의 예속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와 한국의 독립이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란다.

그렇다면 누가 맞는걸까?

한국인이 생각하듯이 일본제국을 싫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의사가 사실일까? 아니면 "메이지라는 시대1,2"의 저자 도널드 킨의 주장처럼 메이지 천황을 존경한 안중근이 사실일까?

그런데 약간의 단서는 남아있다고 한다.

바로 안중근 의사가 사형 전까지 감옥에서 집필한 글들이다.

“안중근은 메이지 천황을 존경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818346.html

먼저 나무위키 자료를 보면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이 개화파 청년 그룹이었고 일본 유학을 준비중이었다고 한다. 안중근의 집안 분위기가 그랬다면 안중근도 일본에 별로 적대감이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도 되지 않을까?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은 개화파 청년 그룹이었는데 갑신정변으로 일본 유학(박영효의 장학생)이 좌절되자 7살의 안중근과 함께 일가 친척들과 함께 황해도 신천군 두라방 청계동(현 황해남도 신천군 석교리)로 이주하여 은둔했다. (나무위키)

오래전 일이지만 교회 도서관에 안중근의사의 위인전이 있어서 빌려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좀 의외네 하면서도 그냥 읽고 넘어간 내용이 있었는데 바로 안중근이 동학도들을 찾아다니며 죽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그래도 역사의식이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높이 평가하는 동학운동...!

그런데 그것도 16세 밖에 안된 안중근이 그 아버지 안태훈과 함께 동학도당이 어디에 나타났다는 소리만 들으면 그들을 찾아가 소탕하러 다녔다는 사실...!

이런 내용을 처음 듣는다면 내 말이 거짓말 처럼 느껴지겠지만, 인터넷으로 나무위키만 찾아봐도 나와있는 내용이다. 물론 거기에는 많이 삭제되어서 순화되고 미화된 내용들만 나오지만...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황해도 관찰사(종 2품) 정현석(鄭顯奭)과 해주 감사가 청계동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16살의 안중근은 우수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박석골 전투 등에서 동학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나무위키)

그리고 전투는 경험이다. 상식적으로 전투를 하고 사람들(동학도)을 죽이는 일에 16살의 안중근이 무슨 우수한 지도력을 발휘했겠는가? 이런게 미화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나무위키에는 또 "안응칠역사"의 내용 일부도 나오는데 "당시 일본 하급 장교인 스즈키란 자가 군대를 이끌고 지나가다 우리가 동학당에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신을 보내어 축하의 뜻을 표한 적이 있었다"라고 적고있다. 여기서 '우리'는 안중근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몇몇 무리들을 말한다. 바로 안응칠이 안중근의 어릴적 이름이고, "안응칠역사"는 안중근이 감옥에서 사형 전까지 집필하던 책이다.

안중근은 그의 자서전에서 '우리가 동학도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말하자 일본군 장교가 우리를 축하해줬다'고 적고있다. 다시 말하면 안중근은 동학군과의 싸움에서는 일본군과 동지였었다는 사실이다. 또 그는 사형 전까지도 동학도들을 증오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동학도들을 소탕하러 다녔었던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사실은 아래 위키백과에도 잘 나와있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안중근의 부정적 시각은 생애 말년 옥중에서 쓰던 《동양평화론》 전감(前鑑)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첫 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나간 해(갑오년) 일청전쟁을 논하더라도 그때 조선의 좀도둑떼와 같은 동학당의 소요로 인해서 청일 양국이 군사를 움직여 건너와 무단으로 전쟁을 시작하여 서로 충돌하였다. (위키백과)

마지막으로 안중근의사가 사형 전 뤼순감옥에서 쓴 "내가 이토를 처단한 열 다섯가지 이유"를 보면 우리(한국인)에게는 이해가 안가는 내용들이 나온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일본 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죄”와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가 들어가 있다. 참고로 아래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는 당시 싱가포르 영자신문인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 기사에 나온 내용이다.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둘째, 1905년 11월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셋째. 1907년 정미7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죄

넷째,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다섯째, 군대를 해산시킨 죄

여섯째,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일곱째,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여덟째,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아홉째,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열 번째, (제일은행) 은행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열한번째, 한국이 300만파운드의 빚을 지게 한 죄

열두번째,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열세번째,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열네번째, 일본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죄

열다섯번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등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 보도한 영어매체 기사 첫 발견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6/2014032600457.html

안중근 의사의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 보도한 영어매체 기사 첫 발견

안중근 의사의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 보도한 영어매체 기사 첫 발견

www.chosun.com

그러면 안중근의 열네번째 이유인 "일본 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죄"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조선인 입장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의 천황을 죽인것이 조선인인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해야할 이유가 될까? 또 열다섯번째 이유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도 생각해 보면 일본은 그럴생각이 없었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속였다는 의미인가?

아마도 이 질문에 시원하게 답해줄 한국인 학자는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료를 보고 역사를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근대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우리 역사학자들 보다는 서양학자들의 역사 해석이 사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로 안중근의사를 독립운동가라고 배우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안중근의사가 일제시대 때 활동한 줄 아는데 안중근의사가 살아있을 때의 조선(대한제국)은 아직 독립국이었다. 의외로 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리고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1년이 못되어서 조선은 일본에 합병이 되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군부를 중심으로 정한론자들이 판치기 시작했는데 이들 정한론자들의 반대편에 서서 조선합병을 가로막고 있었던 자가 이토 히로부미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몽르 동심파괴] 제2의 탈아론 (2024.05.03.)

https://tv.naver.com/v/50834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