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2024) 감상
작성자 녜쭌
오티티봄
<탈주>(2024) 감상
<탈주>를 봤습니다. 얼마 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는 '영화값이 아까워 눈물을 흘렸다'던 후배 K양의 후기가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한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꽤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감독: 이종필
장르: 액션, 스릴러, 밀리터리, 드라마
각본: 권성휘, 김우근
출연진: 이제훈, 구교환, 송강, 이솜, 신현지
이 글은 영화 <탈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제훈은 흙수저 중의 흙수저. 찢어지는 가난으로 선택지가 없었던 그는 군인으로 직업을 삼아 10년을 복무했지만 그 사이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제대 후 미래도 암담합니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남으로 탈주하는 꿈을 깊이 가지게 됩니다. 매일 밤 부대를 몰래 탈출해 도주로를 확보해 놓기까지 합니다.
초소 경계 근무를 서는 밤, 홀로 남은 이제훈은 익숙하게 남한 방향으로 라디오 주파수를 잡습니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라는 노래에 맞추어 과거 회상이 짧게 지나갑니다. 그러나 노래가 가진 지역성과 시간성 등이 화면의 상황과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인지, 노래가 영화 밖으로 튀는 느낌입니다.
영화에서의 첫 번째 탈주 시도는 꽤나 빠르게 이루어졌는데, 바보같은 이제훈의 후배 병사 하나가 일을 그르쳤습니다. 갑작스레 비가 온 탓에 그동안 만들어 둔 이제훈의 '지뢰 지도'가 무용지물이 될 것을 우려하고, 무리한 탈출 작전을 짠 탓입니다. 그를 저지하려던 이제훈 또한 반동분자로 차출되어 벌을 받을 위험에 처합니다. 하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높으신 분 구교환이 나타나 그의 결백을 조장하고, 공로를 치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제훈은 계속해서 혼란스러워합니다. 제대 후 바로 남한으로 탈주할 생각이었음을 알기라도 했던걸까요. 구교환은 이제훈을 최전방에서 최후방으로 배치하고, 군사와는 거리가 먼 아~주 편한 일을 맡겨버립니다. (고수익 꿀알바... 저 같았으면 함.) 이제훈은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한 표정을 짓지만, 구교환은 이것이 이제훈을 위한 결정이라며 그를 다독입니다.
결국 이제훈은 자석이 이끌리듯, 자신의 영혼이 이끄는 대로 남으로 향합니다. 그 사이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구교환은 계속해서 이제훈을 회유합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최소한의 처벌을 받고 끝나게 해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집 나간 야생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뢰를 밟아 죽을지언정 자신은 구교환에게, 북에게 소속된 적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이제훈은 뛰어난 군인입니다. 각종 전략으로 추격대를 따돌리며 포위망에서 빠져나갑니다. 무전기만 쥐고 있던 구교환은 미치고 팔짝 뛰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결국 구교환은 직접 현장에 뛰어듭니다.
대한민국을 코앞에 둔 밝고 푸른 초원에서 두 남자의 육탄전이 펼쳐집니다. 구교환은 사람이 어떻게 하고싶은 걸 다 하고 살겠냐고, 나도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냐고. 자꾸 개집으로 들어오라고 회유합니다. 계속해서 흔드는 당근에 넘어가지 않는 이제훈. 총알에 종아리가 터지더라도 본인은 자유를 향해 가겠다고 합니다. 어떤 절망도 희망도 모두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는 이제훈의 결연한 모습은 길들여진 적 없는 야생동물 그 자체입니다.
마지막 장면, 구교환은 이제훈이 두고 간(군이 압수한) 소지품을 다시 펼쳐봅니다. '피아노 형'인 본인이 선물했던 생일 선물, 아문센입니다. 정작 꿈을 심어 주었던 구교환은 러시아 유학 시절의 꿈도 다시 떠올리지 못하는 신세인데, 이제훈은 훨훨 날아 구교환의 손에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전체 평점 ⭐️ ⭐️ ⭐️ ⭐️
전체적인 구성이 한국 영화의 기승전결 구조와 달라 신선한 영화입니다. 화면과 음악도 아름다워서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감독이나 각본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잘 전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평소 이와 같은 영화를 즐겨 보지 않아서 그런지, '보위부'와 같은 알아듣기 힘든 용어가 많았고 긴장감이 도는 장면에서는 그들의 스릴 넘치는 대사 티키타카를 따라가기 벅찬 부분도 있었습니다.
또 장르에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몇몇 장면에서 액션과 스릴러가 도드라져 보이기는 했지만, 인물들의 대사와 화면 구성, 음악 같은 것들은 이 장르를 예술, 로맨스 등으로 분류하기도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실제로 송강은 구교환의 전 애인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구교환의 휴대폰에 저장된 송강의 이름을 본 사람은 모두 '어?' 할 것 같은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죠.)
오히려, 이제훈과 구교환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과 재능에 대한 부분을 조금 더 조명했다면 훨씬 더 드라마적인 장면이 잘 연출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요. 군인 신분임에도 총기가 멀리에서 난사되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끄럽다'고 하는 예민보스 구교환, 그리고 본인은 누구보다 군인을 그만두고 남한에 소속되고 싶어하지만 단 몇 발의 권총 총알만으로 서치라이트를 끌 줄 아는 재능충 이제훈. 두 사람의 개인사를 조금 더 조망했다면 '루즈한 액션 영화'가 아닌 꽤 재미있는 인간사에 대한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