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작성자 봉기
호외.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이를 해제했습니다. 봉기의 에디터들은 이 위헌 계엄령의 반민주주의성에 깊게 통감하여, 봉기의 지면을 빌려 독자들에게 호소합니다.
비상계엄이란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역사책에서, 영화 속에서나 봤던 계엄 상황을 실제로 마주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었고, 우리의 오늘을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멍하니 뉴스 속보를 바라보며 이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만 반문했습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국회에 속속들이 모여드는 의원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하늘에는 헬기가 날아다녔습니다. 도심에선 탱크가 활보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잠드는 것조차도 죄책감이 느껴지는 밤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계엄령은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는 계엄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비극적으로 희생된 수백 명의 시민을 떠올릴 때, 계엄령은 단순한 통치의 수단이 아닌 폭력의 상징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4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금 이 단어를 마주했습니다.
청년으로서 나의 역할과 책무를 궁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뉴스 속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반 시민에게는 아무 영향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상계엄이 선포된 일상을 평소와 같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그 무엇도 담보되지 않은 순간이었습니다. 내일, 오늘과 같은 일상을 살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악몽 같던 계엄령이 해제된 후 나는 여전히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이 계엄령의 해제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신은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객관적 단서”가 있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특검도 수사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으로 송출한 비상계엄 선포 담화엔 “객관적 단서”가 있습니까. 당신이 언급한 ‘종북 세력 척결’은 단지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극하고 결집하려는 말은 아닙니까. 국회가 ‘범죄자 소굴’이 되었다는 주장은 당신의 편협한 주관에 따른 졸렬한 정치 선전은 아닙니까. 비상계엄의 근거로 언급한 ‘마약 천국’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것은 아닙니까. 빈약한 비상계엄의 논리를 꾸미는 미사여구는 조악하기만 합니다. 당신은 진정 국민이 그 어설픈 주장에 선동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외쳤던 비상계엄의 근거는 한국 민주주의에 큰 상흔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번 비상계엄령은 단순히 윤석열 개인의 일탈이 아닙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결함뿐 아니라, 대통령의 독단적 계엄법 행사를 가능케 한 제도의 결함도 포함합니다. 실패한 계엄 혹은 윤석열의 쿠데타는 그가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우리 법 제도의 결함을 지시합니다. 그간 우리는 대통령이 홀로 국가를 전시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 계엄법을 개정도 없이 방치했습니다. 여러 차례 현행 계엄법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음모론자 취급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우리는 제도를 정비하지 못한 공동체의 실패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맡기면서 그의 상식을 믿었던 우리의 안일함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12월 3일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 선포는 개인의 무지와 방만한 정치‧법 제도의 결과이자 우리 모두의 실패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독자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이 시대의 청년은 정치 앞에 자의로, 혹은 타의로 쉽게 무력해지곤 합니다. 혹자는 청년이 정치 참여에 무관심하다며 책망합니다. 냉혹한 현실 앞에 매일을 살아남다 보면 그들의 말대로 정치를 외면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청년이 정치권의 이전투구에 실망해 등 돌렸을지언정,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져버리고자 했던 적은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가 청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청년이 역사의 선봉에 설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고, 성찰과 비판, 그리고 실천으로 사명을 완수하는” 진정한 지식인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갈고닦은 지혜와 통찰을 결코 개인의 안락과 영달에 머물게 하지 맙시다. 민주화의 중심에 섰던 선배들의 긍지를 이어받아,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대한 물결이 됩시다. 우리가 나아가는 길이 곧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